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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의 세계에서 바라본 일본

어느 늦깍이 일본 유학생의 아이키도(合気道) 체험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본 아이키도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체험기! 무협지에서나 보던 내용이 실제로도 가능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일본에 유학하려는 사람, 뒤늦게 공부하려는 사람, 혹은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이제까지 몰랐던 색다른 분야의 유용한 정보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와 함께 무도의 나라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무도 중 하나인 아이키도를 한 번 체헙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리라 생각한다. 무도를 공부하면 일본 사람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사무라이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어느 늦깍이 일본 유학생의 아이키도(合気道) 체험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본 아이키도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체험기!
무협지에서나 보던 내용이 실제로도 가능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일본에 유학하려는 사람, 뒤늦게 공부하려는 사람, 혹은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이제까지 몰랐던 색다른 분야의 유용한 정보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와 함께 무도의 나라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무도 중 하나인 아이키도를 한 번 체헙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리라 생각한다.

무도를 공부하면 일본 사람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사무라이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학생으로서 흔하지 않은 저자의 아이키도 수련 경험담인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또 다른 각도에서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속으로>
* 그는 아이키도(合気道) 도장에 가면 일본인 친구가 금방 생겨 얼마든지 일본말을 쓸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기숙사에서 가까운 도장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엔 정말 일본어 회화나 연습할 겸 일을 찾을 때까지만 도장에 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일보다 아이키도를 더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여기까지 한 것을 보면 나의 인연은 정말 돈보다 일본무도와 공부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든다.

* 그런데 나는 아줌마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여자에게 무심코 내 팔이 비틀렸을 때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어른이 창피하게 그것도 여자에게 당하고 무슨 비명이냐고할지도 모르나 정말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였다 .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 나는 처음 아이키도 본부도장을 방문했을 때 게이코를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백발이 많이 눈에 띄어 놀란 적이 있다. 즉 연장자가 많았다는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아! 나도 아직 늦지 않았구나! 지금 다시 시작해도 충분히 되겠구나!’ 하고 자신감도 얻었다. 여성도 많았다. 게다가 유치원생 같은 어린이도 어른과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게이코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무도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정경이었다.

* 상대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고 위의 기술 어느 것이나 통달한 달인이라면 총탄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제압할 수 있으므로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허풍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키도를 만든 가이소(開祖)는 실제로 총과 몇 번이나 겨뤄서 총알을 피해 이를 증명한 적이 있다. 또 가이소는 오오모토교(大本教)를 포교하러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와 만주에 가서 마적단과 만났을 때 이 기술을 써서 총탄을 피해 가며 적을 제압해 모두를 구했다고 한다.

* 연세는 칠십대 중반을 넘었는데 아주 건강하다. 키나 덩치도 작은데 손 단련을 많이 해서 팔목이 건장한 남자의 발목 정도로 굵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큰 전 레슬링이나 유도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던 제자들을 가볍게 던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우라호 선생님은 지금의 JR철도 전신인 일본 국철(国鉄)에 17살에 입사해 다니던 중,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사이토 모리히로(齋藤守弘)의 소개로 가이소에게 직접 아이키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가이소의 신기에 반해 우찌데시(内弟子)가 된 후 지금까지 수련을 했으니 소위 무협지에서 말하는 한 갑자(甲子)하고도 1년 동안 아이키도를 연마한 셈이다. 기술이야 그 분 제자들의 경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앞에서도 말한 인품이 정말 부처님 같다.

* 그런 사이토 모리히로가 살아 있을 때는 앞에서 말 한대로 일반인은 이와마 도장에 입문은커녕 견학도 할 수 없었다. 아이키카이 본부도장의 소개장이 있어야 견학이나마 허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온 아이키도의 어느 고단자에게 직접 들은 말에 의하면 그는 이와마 도장 견학을 하려고 먼 길을 갔다가 소개장이 없어 문전 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나도 히토츠바시대학 아이키도부에서 견학도 허용 안 된 적이 있으니 일본 무도는 역시 아무에게나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전통인 것 같다. 에도(江戸)시대만 하더라도 타 도장 사람이 몰래 게이코를 훔쳐보다가는 가차 없이 칼을 맞았다고 한다. 이만 보아도 자기 도장의 기술을 얼마나 비밀리에 소중히 다루었는지 가히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 일본 경시청은 요신칸 아이키도를 채택하고 있다. ‘아이키도’라고 하면 아이키카이가 제일 규모가 크고 게이코 인구도 전 세계에 약 200만 명58)이 넘을 정도로 제일 많은데 경찰들은 왜 그 산하의 아이키도와 갈라진 유파의 아이키도를 택한 것일까?
그것은 경찰이 범인과 격투하거나 체포하는데 실전에서 통용되는 아이키도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마 아이키도는 매일 지루하리만큼 기본기만 반복해서 연습하는데 비해 아이키카이 본부 아이키도는 화려한 기술을 많이 연습한다.

* 우라호 선생님 말에 의하면 하루는 도쿄에 행보했던 가이소가 이와마에 돌아와 “지금 도쿄에서 하는 기술은 아이키도가 아니야!” 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즉 기본기를 연습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낸 것이라고 한다. 아들이 아이키도 보급을 위해 아버지를 초청하면 응해주고, 해외원정까지 많이 가기는 했어도 진정한 기술은 보이지 않고 건성으로 연무했다고 한다. 특히 비디오카메라나 사진기를 보면 더욱 적당히 건성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 비전의 수련은 자정에 수제자 한 명만 조용히 불러 촛불 하나만 켠 채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한다.

* 가이소의 몇 개 안 남은 흑백으로 찍은 비디오를 보면 지금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신기가 많다. 그런데 그게 다 건성으로 한 연무였다니 ‘진정한 실력은 어떠했을까?’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실력은 그가 영면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의 실력이 아니라 신기(神技)라고 까지 칭송을 받고 있다.

* 메구미짱 아버지는 어느 날 이자카야(居酒屋)61)에서 몽고 씨름 선수 겸 스모 선수 출신의 거한과 언쟁 끝에 싸움이 붙어 아이키도 기술을 한 번 써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힘도 안들이고 피하며 슬쩍 고큐나게(呼吸投げ)로 던졌는데 150킬로그램은 되는 거한이 2~3미터는 날아가 꼬꾸라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이키도의 매력에 빠져 더욱 수련에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시절 사이토 모리히로가 가르치는 아이키도부를 유도부 주장
으로서 깔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아이키도를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 한다고 했다

* 우리나라 사람보다 일본 사람들 중에 무도의 달인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 같은 동작을 오래하는 사람이 드문데, 일본 사람들은 똑 같은 동작을 평생 묵묵히 하니 진정한 달인이 많다는 것이다. 다쿠쇼쿠 대학 출신의 그 선배도 무도를 평생 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 사람도 우라호 선생님의 신기 앞에는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도죠 야부리(道場破り)출신이다. 그는 아이키도에 입문하기 전까지 수 십 개의 도장을 다녀 보았지만 우라호 선생님 딱 한 분한테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정래

1961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났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한 일본인과의 펜팔을 계기로 늦공부에 불이 붙었다. 30대 중반에 한국방송대학 일본학과에 진학하여 2학년 때 일본유학 길에 오른다. 국립 도쿄외국어대학(東京外国語大学)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한국 무도인 ‘태권도와 내셔널리즘’을 주제로 정하고 사회학 분야의 명문 국립법인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学)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을 단위취득 만기퇴학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저자는 일본 무도에 흥미가 있었는데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을 만든 주역이 무사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 무사들의 후손이 지금의 일본을 있게 했기에 무도는 일본을 연구하는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무도를 공부하면 일본 사람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사무라이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학생으로서 흔하지 않은 저자의 아이키도 수련 경험담인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또 다른 각도에서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도쿄에서 한글교실과 정체원을 경영하며 ‘정기도(整気道) 건강운동 교실’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일본인에게 몸의 통증을 없애고 건강을 전하는 한국인으로 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이것이 진짜 일본이다』,『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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